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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조각3

빛 _ 달의 조각 中 그 아이는 투명했어요. 저 아래 바닥에 깔린 고운 모래와 헤엄치는 아름다운 물고기들, 우리가 타고 있는 배의 그림자까지 다보이는 바다였어요. 표현에 익숙한 그 아이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어요. 화낼 일이 있으면 화를 냈고, 울고 싶을 때면 울었고 누군가를 좋ㅇ아하면 그 마음을 말로 전할 줄 알았어요. 사실 부러웠어요. 누가 보아도 구김살 없이 자란 것 같은 맑은 모습이, 능숙하게 어리광을 부릴 줄 아는 모습이, 철들 필요를 느끼지 못해 아직 철들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순수함이, 내 바다는 겨우 한 뼘 아래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한편으로는 다행이러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의 바다에 깔린 고운 모래도, 아름다운 물고기도 나에게는 없었으니깐, 자꾸만 가리고 싶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내 바다를 .. 2020. 5. 2.
기억을 만지는 일 _달의 조각 中 오랜만에열어 보는 손 닿을 일 없는 세 번째 서랍 속에서 반쯤 뭉뚝해진 노란 연필 한 자루와 언젠가의 새벽을 써내려갔던 낡은 일기장을 발견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무심코 뒤적이던 지갑속에서 몇 달 전 관람했던 전시회의 입장권을 발견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겨울을 맞아 꺼낸 코트 주머니에서 지난 겨울을 마셨던 커피의 영수증을 발견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기억을 만지는 손끝에서는 온기가 피어나고, 나는 아득한 기분으로 순간을 여행합니다. 그날의 공기가 작은 바람이 되어 불어옵니다. 나는 또 어떤 기억과 함께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찾아올까요. 그때의 손끝에도 작은 온기가 묻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달의 조각 中` 박혜경 - 너에게 주고 싶은 세가지 2020. 5. 2.
새벽을 닮은 사람_달의 조각 中 어둡지만 환했고, 늦었지만 일렀고, 차갑지만 따뜻했던 당신은 느리지만 빠르게 사라져 버렸지. 노을이 지나간 자리에서 아침을 기다리다 마주친 동틀 무렵의 새벽 같은 사람아. 결국 당신없이는 어떤 아침도 밝을 수 없어서 나는 아직 밤이다... -달의 조각 中 에피톤 프로젝트 - 새벽녘 2020. 5. 2.